해설자:
히람 파워스는 가장 유명한 미국의 조각상으로 꼽히는 그리스 노예를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1846년 작입니다.
터키에 맞선 그리스 독립전쟁에서 파워스가 영감을 받았지만, 많은 19세기 관람자들에게, 이 노예 여성은 미국에서 노예제에 항거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조각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널리 전시되었으며, 작은 복제품들이 판매되었습니다. 그 중 한 점은, 위대한 노예해방론자인 프레드릭 더글라스가 보유했습니다.
카말 맥크라렌:
저는 카말 맥클라렌입니다. 국립공원국, 자유를 향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매니저입니다. “시더 힐”이라고도 알려진 프레드릭 더글라스 국가유적지의 큐레이터였습니다.
시더 힐의 더글라스 생가에 가면, “노예해방론자의 소명”을 나타내는 수많은 예술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더글라스는 “과거 활동”에 대한 교훈을 전달하면서 노예해방 운동의 기억이 살아있도록 이 예술작품들을 종종 이용하였습니다. 더글라스가 종속된 노예에서 노예해방론자로 바뀔 때, 이 상징적 조각상은 그의 열의와 여러 면에서 직접 연결되었습니다.
특히 1840년대에는, 이 조각상이 국내외의 여러 전시회에서 소개되었으며, 이 그리스 노예 조각상을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관해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토론이 일어났습니다.
해설자:
노예제 전통에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 예술의 역할은 이 그리스 노예 조각상과 이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일부 논쟁은 미국의 노예제 폐지라는 거대한 문제에 집중되었습니다. 여자의 전신 나체에 일부 관람객이 놀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자의 얌전한 표정과 자세, 그리고 억류자에게 발가벗겨졌다는 사실의 인지는 비도덕적인 것은 여자의 드러난 육체가 아니라 노예제의 부당성임을 제시합니다.
카말 맥크라렌:
히람 파워스가 이 대화를 시작한 셈입니다. 1840년대부터 1850년대와 1860년대까지 우리의 도덕적 용기에 의문을 제기한 겁니다. 오늘날 제가 보기에, 노예제의 잔재와 이들 예술 작품을 둘러싼 논의가 여러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